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금주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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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멈추고, 소녀는 우리를 바라보고

향린교회 교우

주님,
어찌하여 이러한 죽음을 우리에게 주십니까?
그날 이후 눈앞을 떠나지가 않습니다.
주황색 구명복을 걸치고
두려운 눈망으로
기울어진 선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소녀 소년들의 모습이...
하염없이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주님,
어찌하여 우리를 이 깊은 심연에 가두시나요?
그날 이후 머릿속을 떠나질 않습니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말해왔듯이
어른들의 말을 잘 들으면 안전할 거라 믿으며
끝내 자리를 지키던 학생들이
90도로 꺾인 선실로 차가운 바닷물이 차오를 때
소녀 소년들이 경험한 그 잔인한 배반을...
갈갈이 갈갈이
가슴이 찢겨져 나갑니다.


주님,
어찌하여 옴짝할 수 없게
우리를 시간의 가움에 가두시나요?
그 순간 우리의 시간은 모두 멈추었습니다.
24시간, 48시간, 72시간...
그러나 그 검은 바닷물 속으로
시간은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방에 갇히던
그 사람들의 눈망울도 그랬었나요?
철무에 잠기고 가스가 차오를 때
그 사람들의 가슴도 그랬었나요?.


주님, 다시는 경험치 않을 것 같았던
그 시퍼런 죽임을 왜 우리 생활 앞에 펼쳐놓으시나요?


그래요,
그토록 우리는 깨끗한 눈망울들을 외면했습니다.
그토록 우리는 헛된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그토록 우리는 그저 앞을 향해서만 치달았습니다.


정말
우리의 이 차가운 가슴이
우리의 선진 기술로도 꼼짝하지 않는 쇳덩어리가 되어
시커먼 바닷속에
소녀 소년들을 가두어버렸나요?


시간은 멈추었고
또다시
하염없이 하염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주황색 구명복을 걸치고
기울어진 선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소녀 소년들의 두려운 눈망울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바라봅니다.


주님
이 눈물이 그저 멈추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 연약한 생명들을 우리가 온몸으로 보듬을 수 있을때까지는...
이 아픔이 그냥 잦아들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 푸른 생명들을 기만하는 거짓의 성찬이 끝나기 전에는...
이 죽음들이 다시 소생하기를 감히 소망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의 물욕과 이기심, 무관심과 공포,
옆사람의 발을 밝고, 어깨를 채며 돌진하는 우리들의 무한질주가
끝없이 죽음을 다시 불러들이는데
한없이 생명을 희롱하는데...


주님
그저 땅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아 있으렵니다.
그러다 겨우 용기를 내어
선실 구석장이에서 빤히 우리를 바라보는
소녀 소년들의 눈망울을 마주 보겠습니다.
거기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거기서 다시 일어서겠습니다.